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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사에 있어서 현대를 언제부터로 규정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 논의가 있어 왔다. 어떤 학자들은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한 1901년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으로 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1880년경을 현대 영문학의 시작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기준이 모두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우선 1901년 즈음을 현대 영문학의 시점으로 보고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영미 시와 엘리엇, 예이츠
현대 영미시의 출발은 파운드(Ezra Pound)를 주축으로 한 20세기 초반의 이미지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 이론은 매우 선명하고 확고했으며 명확한 이미지를 사용하고자 했던 흄(T. E. Hulme)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낭만주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과 주정주의를 경계했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이 강조한 원칙은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절대 자유를 지닐 것, 명확한 이미지를 줄 것, 집중적 표현을 존중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이미지즘 운동은 다소 편협하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재 선택에서 자유로움과 새로운 리듬을 강조함으로써 20세기 영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즘은 짧은 묘사의 서정시에나 적합한 형식이었으며 길고 복잡한 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한계점도 있었다. 파운드가 초기에는 이미지즘에 천착했다가 나중에 보티시즘(vorticism)으로 전향한 것도 이러한 이미지즘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 영시의 방향을 결정지는 시인은 바로 엘리엇(T. S. Eliot)이었다. 그는 17세기의 형이상학파 시인들과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고, 르네상스 시인들이 "어떠한 종류의 경험이라도 집어삼킬 수 있는 감각의 메커니즘을 가졌다"라고 보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그들의 사고를 마치 장미꽃의 향기를 맡듯이 즉시 느낀다"라고 평했으며, 17세기 중반쯤 감수성의 분열이 일어났으며 밀턴과 드라이든의 영향으로 더 심해졌고 이후의 시들이 감정과 사상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엘리엇의 주장은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밀턴에서 예이츠까지 거의 모든 시들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데 동의했다. 사상과 정서가 통합된 시를 좋은 시로 간주했던 엘리엇은 "시는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며 반낭만주의적인 몰개성 시론을 전개했다. 이는 즉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자신의 느낌을 과학의 상태에 이를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하면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영미 문학사에서 엘리엇의 <황무지>는 워즈워스의 <서정담시집> 이래 가장 혁명적인 시로 간주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함을 다룬 이 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신화와 전설, 성경 구절, 불교 철학, 힌두 철학 등이 배경에 깔려 있어서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황무지나 다름없는 현대 생활의 재생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로 분석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20세기 영미 희곡, 사실주의와 반사실주의
현대희곡은 19세기말의 사실주의와 이에 반하는 반사실주의 극으로 구분된다. 사실주의 극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취지로 중산층 관객들에게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면서 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해주는 사회비판극이었으며, 쇼(G. B. Shaw), 오닐(Eugene O'Neill),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등의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쇼는 현대연극의 효시인 입센의 사실주의 극을 받아들이고 빅토리아풍의 연극 경향을 비판하며 이념 희곡(theatre of ideas)을 주창했다. 추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간성과 인간이 만든 사회제도는 불완전하여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이상적인 면을 추구하고 있다는 이념을 보여주었다.
오닐과 윌리엄스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표현주의, 상징주의적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사실주의를 더욱 확장하고자 했다. 오닐은 니체의 철학사상, 융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작품 주제로 많이 사용했다. 오닐은 사실주의 경향을 바탕으로 표현주의적 기법과 가면, 신화와 상징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극작가였다. 한편 윌리엄스는 주로 옛날 남부의 농경사회와 현대 산업사회 사이의 문화적 충돌 및 현실과 환상의 갈등을 그렸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실주의로 분류되지만 상징주의적 기법들도 많이 발견된다. 예컨대 <유리 동물원>에서 톰은 극 중 사건이 벌어지는 현재와 과거의 기억 사이를 넘나 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빛과 흰색, 목욕과 음악 등을 활용해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드러나지 않은 동기 등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사실주의 극은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세계의 개선을 촉구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세계 자체를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했기에, 차츰 사실주의 극이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 도구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와 더불어 반사실주의 극운동이 생겨나게 됐다.
사실주의 극에 반발하는 새로운 극의 흐름에는 표현주의극, 잔혹극, 서사극, 부조리극 등이 있었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와 카뮈(Albert Camus)의 실존주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던 부조리극은 1960년대 이후 베케트(Samuel Beckett), 핀터(Harold Pinter), 올비(Edward Albee), 스토파드와 같은 대가들의 출현으로 영미 희곡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부조리극의 작가들은 인간존재의 무의미함과 의사소통의 불가능성, 무기력함 등을 주제로 다뤘고 세계를 지지하는 중심이 사라진 현대세계를 극화했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 초연 당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사기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연극사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20세기 연극의 매우 중요한 기점으로 여기고 있다. 부조리극은 무대기법과 주제, 세계관 등에 있어서 이전의 사실주의 극과 너무도 큰 차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영미 소설, 의식의 흐름
1912년부터 1930년대까지는 로렌스(D. H. Lawrence), 조이스(James Joyce), 콘라드(Joseph Conrad), 울프(Virginia Woolf), 포스터(E. M. Forster)와 같은 소설문학의 거장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의 작품은 모더니즘 계열 작품으로 분류되는데 그 이전의 소설과 차이를 보인다. 빅토리아 시대의 보편적 가치 체계가 붕괴하면서 작가 개인적 가치 체계가 대신하게 된 점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새로운 시간관, 개인의 본질적인 고독에 대한 강조되었다. 따라서 20세기 초중반의 현대소설은 개인의 의식만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사랑이 가능한지를 묻는 주제, 타인과의 교감이 가능한지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로렌스는 인간관계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고,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인간관계의 모색과 불가피한 고립을 인간의 존재조건으로 제시했다.
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들 수 있다. 의식의 흐름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게 된 개념으로 과거, 현재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항상 존재하기에 현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한다. 문학 기법으로는 어느 한 시점에 개인 의식 속에 감각이나 기억 등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1920년에서 1930년대의 미국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작가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세대는 스타인 여사(Gertude Stein)가 헤밍웨이에게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된 표현이다. 전쟁의 충격으로 환멸에 빠진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말하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피츠 제럴드(F. S. Fitzgerald), 헤밍웨이, 도스 패소스(John Dos Passos), 포크너(William Faulkner)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치에 회의를 느끼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쾌락주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작가 자신들을 이방인처럼 여기며 무력감과 공허함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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