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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 영문학과 르네상스 시기의 영문학
    문학 2024. 3. 11. 08:31

    중세 영문학

    영국 역사에서 중세 시기는 앵글로색슨족이 영국에 들어온 450년경부터 최초의 인쇄물이 출판된 1485년경까지 대략 1천 년 동안의 시기를 가리킨다. 문학사적으로는 고대 영문학과 중세 영문학이 모두 이 시기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중세 영문학은 프랑스 북부지방에 정착해 살아가던 노르만족이 영국을 점령함으로써 영국이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 '노르만 정복(1066)'을 시작점으로 한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 지역에서 살아온 노르만족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노르만의 영국 점령은 영국 문화와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귀족들이 궁정생활에서 사용한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영어는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비천한 언어로 전락했다. 따라서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쓰여졌고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약 1200년경에 이르러서였다.

     

    중세 시기에도 서정시와 희곡, 역사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이 쓰여졌지만 중세문학에서 눈여겨 볼 것은 로맨스(romance) 문학이다. 12세기에 싹트기 시작한 로맨스는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게 됐는데 전설을 바탕으로 공상과 연애, 모험 등을 소재로 했다. 영국에서는 아서왕(Arthur)의 전설을 토대로 한 로맨스가 주를 이뤘다. 토마스 맬러리(Thomas Malory)의 <아서왕의 죽음>은 아서왕 관련 전설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잉글랜드 왕의 아들인 아서가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르고 엑스컬리버를 손에 넣는 이야기를 비롯해 기니비어와 결혼하며 원탁의 기사단을 인계받고 많은 공훈을 세우는 과정, 기니비어의 불륜, 그리스도의 최후에 만찬에 사용된 성배를 찾는 모험 이야기 등 아서왕 전설의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초서(Geoffrey Chaucer)의 대표작인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는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떠난 순례객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기사와 수도원 원장, 사제, 법률가, 시골 사제, 탁발수도사, 면죄부 판매인, 의사, 옥스퍼드 대학생, 직조공, 선원, 상인, 방앗간 주인 등 영국의 각종 계층의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영국의 세계관과 풍속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상류층의 품위 있는 이야기와 서민계층의 이야기가 나란히 병치되면서 다양한 계층의 시대상과 생활상이 담겨있다.

     

    중세 영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 중에서 현존하는 맬러리와 초서의 작품 같은 세속문학보다는 성자들의 생애를 그린 종교적인 내용의 글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당시에는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계층이 귀족과 성직자로 한정돼 있었던 데다 도덕적 교훈을 우선시했던 종교적 분위기 때문에 즐거움을 목적으로 했던 세속문학은 기록으로 보존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르네상스 시기와 17세기 영문학

    르네상스 시기와 17세기 영문학
    르네상스 시기와 17세기 영문학

     

     

     

    르네상스의 도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사조는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 영국 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국왕의 권위가 강화되었고, 국가(nation)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교회와 신에 대한 인간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은 종교개혁으로 진행됐다. '재생, 부활'이라는 뜻을 지닌 르네상스는 어떻게 보면 '서양 고전의 부활'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은 한마디로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분하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성'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성은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필수 능력으로 인식되었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 모두에 있어 잘 훈련된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규정했. 당시 영국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받은 인물이었던 '시드니(Sir Philip Sidney)'는 다양한 고전을 인용하며 시와 극장의 기능을 옹호하는 글 <시의 옹호>라는 비평을 쓴 학자이자 여러 편의 시를 쓴 시인이었으며 전투에서 전사한 용맹한 군인이자 세련된 궁정인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모든 면에서 폭넓은 소양을 갖춘 인물을 보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추앙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영시: 소네트와 목가적 서정시의 유행

    르네상스 시작과 함께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로부터 유입된 14행짜리 소네트가 영국시의 한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와이어트(Sir Thomas Wyatt), 시드니(Sir Philip Sidney), 스펜서(Edmund Spencer), 셰익스피어, 던(John Donne), 밀턴(John Milton) 등 당대의 시인들을 비롯해서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로세티(Christina Rosetti)에 이르기까지 후대의 시인들도 소네트 형식으로 시를 지었다. 엘리자베스 왕조 후기에는 위대한 시인들이 많이 등장해서 시문학이 융성하게 됐다. 스펜서는 서정시에서 서사시에 이르는 여러 장르의 시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시 <선녀여왕(Faerie Queen)>은 로맨스와 우화 형식으로 지어진 서사시로 르네상스 시대 영국 시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6세기의 영국 시인들이 즐겨 사용한 또 하나의 형식은 목가(pastoral)였다. 시인들은 타락한 궁정과 대비되는 소박한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함으로써 출세나 성공의 기회가 상류사회에 한정되어 있던 현실을 비판한 셈이다. 말로의 <정열적인 양치기가 연인에게>라는 목가적 서정시는 당대의 수많은 시인들이 답시를 보낼 정도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목가시 외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연애사건을 바탕으로 긴 시를 짓기도 했다. 말로의 <히어로와 리앤더(Here and Leander)>, 셰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and Adonis)>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시이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의 영국시

    엘리자베스 시대 후기에서 왕정복고가 이러진 1660년까지의 시기에는 형이상학파 시인들과 왕당파 시인들로 불리워진 시인들이 영시의 주류 그룹을 형성했다. 형이상학파 시인이라는 개념은 드라이든이 던을 가리켜 현학적이고 난삽한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는 뜻으로 언급했던 것에서 시작되어 던과 비슷한 시적 경향을 가진 시인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불리게 되었다. 형이상학파 시인에는 던과 허버트 등 종교시를 주로 쓴 시인들과 마블과 같은 부류의 세속시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의 시에서는 육체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실제의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운율, 어법과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과의 논쟁을 벌이는 듯한 댓구의 구도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들은 얼핏 보기에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생각을 갖가지 지식을 동원해 기발하게 연결시키는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cial conceit)'를 사용했다. 이들은 19세기까지는 딱히 평가받지 못했었는데, 20세기에 들어서 엘리엇(T. S. Eliot)이 사상과 감정이 통합된 시로 찬사를 보낸 것을 계기로 재평가되었다. 

     

    왕당파 시인으로 알려진 작가들은 대부분 찰스 1세의 궁정인들이었다. 왕에 대한 충심이 높았으므로 왕당파 시인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들은 존슨(Ben Johnson)의 영향을 받아서 주로 세련되고 우아한 서정시를 지었다. 그들이 다룬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이었는데 로마 시인들의 사상 '현세를 즐기라' 즉,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기저의 정서로 현실적 사랑을 노래했다. 가령 여인과 자연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지나면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니 아름다움을 지닌 동안에 즐기라는 내용 같은 것들이었다.

     

    밀턴은 형이상학파나 왕당파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지만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위대한 시인이었다. 1667년 발간된 그의 대표작 <실낙원>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서사시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성서를 소재로 한 아담과 이브의 타락과 낙원에서 추방 당하는 이야기를 묘사해 인간이 가진 원죄를 주제로 했다. 밀턴은 1640년부터 이 시를 쓸 구상하였으나 20년 가까이 청교도 혁명에 휩쓸리면서 기회를 놓쳤고, 왕정복고로 인해 공화제가 실패하고, 그 자신도 시력을 잃게 되는 불운에 빠지자 작품에 착수했다. 실낙원은 앞을 보지 못하는 밀턴이 구술로 완성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생의 큰 좌절과 실명이라는 개인적 불행을 위대한 서사시로 승화시킨 밀턴의 생애 또한 큰 감동을 전한다.

     

     

     

    셰익스피어 르네상스 영문학 문학
    르네상스 시대 영문학 - 셰익스피어

     

    르네상스 시대의 희곡: 비극과 희극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예부흥이라는 말이 걸맞을 만큼 시문학 분야에 있어서 큰 부흥이 일어났지만 셰익스피어, 존슨, 말로 등을 필두로 한 극문학의 발전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예배극으로부터 출발한 영국 극 전통에 로마 세네카를 통해 흡수된 그리스 고전극의 정신을 접목함으로써 영국 극은 르네상스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크롬웰 청교도 정권에 의해 1642년 극장이 폐쇠되기까지 16~17세기 초반 영국의 희극과 비극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비극작가로는 말로와 셰익스피어가 있다. 말로는 <포스터스 박사>, <몰타의 유대인> 등과 같은 작품에서 시대정신을 선명하게 표출했는데, 극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영역을 넘보는 과도한 사람들(overreachers)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무한 권력 추구에 대한 의지는 인간이 마음먹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을 엿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시와 비극, 희극을 망라한 영문학 모든 장르에서 걸작을 만들어 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되는 그의 작품은 여러 음악가에 의해 오페라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재탄생되었고, <햄릿>은 현대에 와서도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햄릿 머신> 등 여러 작품의 탄생을 이끌어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햄릿>, <맥베스>, <리어왕>처럼 시대 전환기의 혼란을 다루거나 <오셀로>처럼 인간의 격동적인 감정이 자아내는 파국을 그려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희극은 선남선녀의 순수한 사랑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그린 낭만희극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희극에 나오는 배경들은 모두 인간사회의 파괴적 힘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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